3.근면과 탐욕과 돈

근면은  부지런한 것이다. 열심히 하는 것이다. 일을 하든, 운동을 하든, 몸을 움직이든, 마음을 쓰든, 자기의 몸과 마음을 어떤 목적을 위하여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다.

건강도, 즐거움도, 일의 성취도, 근면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근면은 인생에 있어서의 최고의 덕목인 것이다. 

 

돈은 가치의 축적이다. 화폐가 출현되기 이전의 시대에는 물건으로서의 축적은 있었지만 가치만의 축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 물건의 축적은 자신의 노력에 비례 하였다. 남의 것을 빼앗아오지 않는 한 자신이 노력한 만큼만 필요한 물건이 축적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생산과 소득이 일치하는 것이었다.

돈이 출현된 이후에는 가치만의 축적이 가능 하게 되었다.

 

이 가치의 축적은 물건의 교환에서부터 시작된다. 물건의 필요성에 따라 가치가 형성되는데 물건에 대한 필요성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즉 같은 물건이라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필요성이 달라지 게 되는 것이고 이것을 돈을 매개로하여 교환할 때에는 남는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이윤이며 이것이 돈으로 평가되고 또 돈으로 축적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돈의 축적으로서 가치만의 축적이 가능 하게 되었다. 이것이 자본인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탐욕심은 시작된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필요한 만큼만 물건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에 따르는 가치의 축적을 위하여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생산을 위한 근면과는 다른 것이다. 즉 자신의 노력에 의하지 않고서도 교환에 의하여 남의 노력에 의한 이익을 챙기고 돈을 축적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불로소득이 생겨난 것이다. 상인은 정직하게 자기가 노력한 대가만큼의 이익만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인이 취하는 이익은 상대방을 속일 수 있는 수단에 비례하는 것이다.

이 불로소득이 인간을 게으르게 하고 남의 것을 빼앗는 인간 사회에서의 모든 거짓과 해악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건강이나, 지식이나, 정서적인 즐거움, 등의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만 정직하게 얻어지는데 반하여 가치의 축적인 돈, 즉 부는 타인의 필요성에 따르는 가치를 거짓된 방법으로 취하여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즉 인간의 불행은 불로소득을 탐내는 즉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심 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사회의 경쟁과 차별이 시작되는 것이다. 또 돈에 욕심을 내다보면 돈만 보이고 사람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 소외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의 축적은 사람의 탐욕심에 비례하여 증가하며 탐욕심은 다시 더 큰 탐욕심이 되어 경쟁적으로 가치의 축적 즉 자본의 축적을 가속화 시킨다.

 

돈이 출현되기 이전의 사회에서는 사람을 강제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힘이었다. 즉 무력이었다. 인지가 개발되기 이전의 미개한 국가에서는 그리하여 절대 권력자의 힘이 모든 것이었다. 즉 왕의 명령과 의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었으며 권력이 바로 부가 되는 것이었다. 나라의 모든 땅은 전부가 왕의 땅이었으며 따라서 나라의 모든 자원은 모두 왕의 것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지가 개발됨에 따라 화폐가 출현되고 또 많은 문물과 제도가 개발되었거니와 그중에서도 돈의 축적과 함께 부가 형성되게 되었고 이부가 절대권력 즉 왕권에 버금하는 힘을 얻어감에 따라 여기에서 개인의 인권과 소유권에 대한 문제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근대의 민주주의 국가에 이르러서 개인의 인권이 절대적으로 보장되게 되었고 개인의 사유재산제도가 확립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가치의 축적인 부나 자본은 그 축적 과정에 있어서 자신의 재능이나 노력에 의한 부분 보다는 잉여가치 즉 불로소득에 의한 부분이 훨씬 더 크다는 데에 있으며 이 불로소득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 할 것인가? 인정치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즉 사람사이의 부가 백배 천배 만 배로 차이가 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또 이러한 부의 격차는 있는 사람이 자원의 독점, 현실적인 예로는 부동산의 독점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더욱더 빈부의 격차를 가속화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산의 기초가 되는 자원으로부터 멀어진 즉, 자원이 없는 사람을 더욱더 살기 어렵게 만든 다는 것이다. 이것이 풍요속의 빈곤인 것이다.

여기에서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하여 정부가 개입하여 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 사회주의적인 시각이며 능률적인 경제의 성장을 위하여 그대로 방임하여야 한다는 것이 자본주의적인 시각인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더 큰 문제는 자본주의 경제하에서는 재화의 생산이 인간의 필요에 따라 생산된다기보다는 욕심에 따르는 이익을 위하여 생산되기 때문에 더욱 많은 이익을 위 하여는 더욱 많은 물건을 생산하여 더욱 많이 소비시켜야하는 관계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추세로 나아가야 되기 때문에 자원의 낭비로 인한 자원의 고갈과 환경파괴라는 전 지구적 재앙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의 생산을 위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 하여서는 생산단가를 줄이기 위한 저임금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고, 또 이러한 경쟁은 결국에는 자본력의 경쟁이기 때문에 이 경쟁에서 패하는 쪽은 부도가나서 생산체계와 구조에 따르는 사회 기능이 일시에 마비가 됨으로써 대 공황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재앙인 것이다. 미개하였던 시대의 전쟁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되는 원인은 멈출 줄 모르는 무한정한 국가의 경제성장 정책에 있는 것이다.

경제개발의 목적을 인간의 한없는 탐욕심을 동력으로 삼아서 부의 경쟁적인 축적에 목적을 둔다면 인간세상의 불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궁극적으로는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있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를 소중히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새로운 기술의 개발과 생산을 촉진하여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함으로써 우리 인류사회에 공헌하였다. 하지만 반면에 파생된 극단적인 빈부의 격차는 인간사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고, 인간소외와 없는 자의 인권이 유린되는 새로운 계급사회가 형성됨으로써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고 결국은 돈이 왕이 되게 하는 고약한세상을 만들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민주주의 사회가 되려면 인간을 평등하게 하는 사회주의적요소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자본주의적 요소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좌 우의 이념이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구의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일본에서조차도 사회주의 정당이 엄연히 합법적으로 존재하며 사회주의 정당이 보수적인 정당과 번갈아가며 집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혼동하지 말아야한다. 우리와 마주하고 있는 북한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말하는 사회주의적 정책이 있는 국가가 아닌 것이다.

 

북한은 사람의 인권에 기본을 두는 자유와 평등을 이념으로 하는 근대의 민주국가가 아니다. 인간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시장경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즉 물품의 유통과정을 국가가 독점하는 구시대적인 공산독재 김정일 왕조 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로소득을 차단할 목적으로 상인과 시장을 없앴지만 이것은 오히려 근로와 생산의욕을 위축시키고 자본가를 대신한 새로운 지배계급에 의한 부정과 불로소득을 유발하여 나라의 경제가 파탄이 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이러한 북한의 정체는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당치도 않게 북한을 빌미로 하여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나 또는 북한과의 전쟁을 반대하고 공존의 과정을 거치는 점진적인 민주주의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사람을 친북 좌익으로 몰아 부치고 적대시하는 행위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권력투쟁만을 위한 반민주적이고 반민족적인 구시대의 독재적 정치행태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글쓴날 : [14-09-15 20:11] 이종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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