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達人 조창조는 맨손싸움의 1인자다.

싸움의 達人 조창조는 맨손싸움의 1인자다.

 

최대의 사기꾼(조희팔)과 전설의 주먹(조창조)이 한배를 탔다.

 

대구지검은 수억원대의 유사수신 사기범 조희팔의 범죄수익금 일부가 주먹계 代父(대부)조창조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하고 조희팔의 오른팔 "강태용"을 중국에서 붙잡아 조사중에 드러난 것이다.

대한민국의 조폭주먹 세계에서 시라소니(이성순)와 김두한 그리고 신상사(신상현)을 잇는 맨주먹의 1인자였다.조창조는 평양(1938)에서 태어나(8)월남해 종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강원,부산을 거쳐 대구에 정착했다.대구에서 6.25를 맞았고 대구 대륜중학교때 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싸움을 잘하는 것을 일본말로 "어깨"를 ?하는 "가다"라 불렸다.

대구일원에서 싸움한다는 학생을 찾아가 차레로 ?혔다.운동에도 천부적인 소질에다 중,고등학교때 권투와 씨름,유도를 배웠다.그때의 키도(176Cm.체중72Kg)컷다 유도 특기생으로 홍익대에 입학했다.

염천시장에 터전을 잡으면서 권투선수 출신인 정기복을 만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60년대 "깡패소탕"을 내세운 군사정권으로 1세대 주먹세계가 와해중이였다.그는 상인협회 경비과장으로 일하면서 가락시장의 모체인 염천시장에는 농수산물이 풍부해 전국각지의 건달들이 모여 들었고 쓰리꾼(소매치기)와 조폭,거지가 많았다.조창조는 하루에 3-4차레나 싸웠다.싸움에는 먼저 찾아가 승부했다

 

한때 이름을 알렸던 국가대표 레스링 선수A씨(장신에 80Kg)와의 싸움에서 발차기 한방으로 ?혀 버렸다.싸움을 본 관객들이 깜짝 놀랐다.그는 호남조직을 키우면서 무교동을 장악하고 조창조-정학모-오종철-은석-조양은 순이였다.호남파가 득세한 "사보이 호텔"사건은 신상사파를 기습(1975년1월2일)하여 몰락시켰다.그때 앞장섯던 인물이 조창조다.

 

조창조는 노태우 후보의 사조직 태림회(1987년 대선때)에서 활약했다.

노태우 후보를 경호했다.광주 유세때는 돌을 맞기도 했다.경북 김천에서 관광호텔 오락실 살인사건으로 구속되어(1991년 12월 8년) 무죄를 주장했지만 형기를 살았다.노태우 대통령의 선처를 바랬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창조의 칠순잔치(2007)에 전국의 조폭 3000여명이 참석해 경찰을 긴장시켰다.

대구지검에선 조창조의 자금이 조창조가 관여하는 재개발 사업체로 흘러 들어간 정황을 포착하고 자금규모,유입경로,사용처를 조사중이나 조창조는 범죄와의 연관성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초에는 조희팔을 몰랐으나 조희팔이 유사수신 사업을 할때(2004-2008년 까지)조희팔이 조창조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여 인연을 맺개된 것이다.검찰은 조창조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자금 전달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인물과 가족까지 들여다 보고 조사중이다.전모가 밝혀질지 매우 궁금하다.

 

2016. 8.4 (한마디: 대한민국이나 미군이 북한의 노동미사일을 요격할 방어 수단이 없다.그래서 들여올수밖에 없는 것이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사드)다.이를 반대하는 것은 야당과 노무현 정권 청와대 비서관,현직 대학교수,정세현(전 통일부 장관)이 맹 비난했다.중국측에 서서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측은 현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원한이 깊다 해도 국가명운이 걸린 안보 문제로 갈등중인 중국편에 설수 있는지 납득할수가 없다.중국측이 빨리 보복해주기를 바라는 모습이다.정파적 이해가 국가를 앞서면 나라가 亡하는 지름길이다. )

글쓴날 : [16-08-13 09:17] 이종민기자[]
이종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