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의 대선과 6번의 총선을 치루면서 격동의 한 시대를 맞이했다

21년간 대한민국 정치사는 격동의 풍랑을 맞이하면서 김대중 정부를 탄생시켰고,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를 맞이했다.5번의 대선과 6번의 총선을 치뤘다.1996년 4월 제15대 총선으로 299명의 국회의원이 당선됐다.

 

신한국당의 김영삼 대통령,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김대중 총재,자유민주연합(자민련)김종필 총재로 대표되는 3김 시대를 맞이하면서 승자는 누가될지 관심이 모아졌다.상도동,동교동,청구동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이다.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총선 결과 79석이라는 성적으로 적신호가 켜졌다.


     이때 아태재단(이강래 상임고문)은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정책연대를 제안했다.

이에 공감한 김대중 총재는 1996년 7월부터 실행에 옮겼다.DJP연합의 시작이였다.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은 DJP연합을 업고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최초의 민주적 정권교체로 불린다.


     "JP 대망론"문건이 최초로 보도되고,충청대망론은 엄청난 파급을 가져왔다.

2001년 7월 김종필 명예총재의 후원자가 김 총재에게 산삼을 기증한 사실이 보도되고 당시 당 대변인은 냉장고에 보관해온 현물을 기자들에게 직접 보여주며 해명했다.


     2002년 6월 16대 대선에 나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병풍사건이 터지면서 당으로 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받았다.2002년 8월에는 "종로구청장 직인 의혹,"진실은 따로 있다"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회창 후보의 장남 병적 기록표에 찍혀 있는 종로구청장 직인이 당시 사용하던 구청장 직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병적 기록표의 위.변조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4개월뒤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대한민국은 발칵뒤집혔다.

당시는 IMF사태가 터진뒤라 국민들은 더욱 경악했다.1999.2000년 각각 연평해전과 6.15공동선언도 국민들의 주요 관심사안이였다.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4대강 대운하","의료 민영화","자원외교 " 등 논란이 컸다.

"촛불집회"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광우병 파동"과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현장을 달구며 민심을 담아냈다.


     "최순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국정농단"은 세계적인 뉴스로 등장했다.

"최순실"의 측근 고영태는 "강남호빠"출신이였고 "차은택은 강남빌딩 수상한 거래 추적의 결과를 낳았다.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의 파일 공개는 커다란 파문을 낳았다."세월호 참사"로 온통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대한민국은 최규하.김대중.노무현.김영삼 등 총4명이 주말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비보에 국민들은 경악했다.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소식에 국민들이 놀랄까?


          2017. 6. 8 (한마디: 국민은 끝나지 않은 전쟁처럼 긴장속에 살아야 한단 말인가? )


글쓴날 : [17-06-11 08:45] 이종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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